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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리어 & MBA/회사 영어

[웹소설] 청사그룹 박사원 1 - 운수 좋은 날

by 후랭쿠 2025. 2. 26.

청사그룹 박사원 1화

Day1 - 운수 좋은 날

 어젯밤 술기운이 채 가시지도 않은 채, 겨우 눈을 떴다. 머리가 띵해서 물을 다시 마시고 침대에 앉아 멍 때리며 생각을 다잡았다. 

아 맞다. 면접 오라는 전화였지. 나 그럼 당연히 된거 아닌가? 나처럼 영어 잘하는 놈을 누가 잘라? 지들이 삼호도 아니고. 내가 아무리 공무원 시험 준비한다고 오래 앉아 있었어도, 호주로 어학연수도 다녀왔는데, 설마 떨어지겠어.

아 그래도 처음 가는 면접인데, 이발도 하고 양복도 사입어야겠다. 아무래도 앞으로 계속 입을 거니까 좋은 양복 좀 사야겠지 싶었다. 평소에는 오후 1시에나 일어나던 놈이 오늘은 7시에 눈이 떠졌다. 어제 전화의 영향인가. 햇살은 따사롭고 이게 회사원들의 삶인가 싶어 벌써부터 기분 좋은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아 맞다. 경인공업은 지수가 일하던 곳이었다. 예전 내가 호주 어학연수 다녀와서 꼭 사귀자고 고백하려했던 지수가 오랜만에 떠올랐다.   

동네 미용실 말고, 오늘은 버스타고 나가서 비싼 미용실에도 다녀오고 오는 길에 아웃렛에 들러 비상금으로 양복을 사 입기로 했다. 오랜만에 정장 차려입으려니 어색하긴 했지만, 이런 날이 또 오겠나 싶어 나름 공을 들였다. 양복을 사러 가기 전에 문득 생각났다.

지수....

호주에서 돌아온 후, 제대로 연락 한 번 못 했던 대학 후배...  못생기지는 않았지만 화장기 없는 수수한 얼굴에  맨날 뿔테 안경에 피부도 안좋아서, 내가 만나긴 좀 그래서 연락을 미뤘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않고 느그적대서 결국 시간만 이렇게 지나버렸다. 어제 면접을 앞두고 ‘경인공업’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뭔가 이상한 예감이 들었는데… 영규한테 술 마시면서 듣기로 지수가 경인 뭐 다닌다 했었는데, 설마 아직 거기 다니고 있는 건 아니겠지?

별 의미 없이 폰을 켜서 연락처를 뒤적이다가, 결국 통화 버튼을 눌렀다.

“띠... 띠... 띠…”

한참을 기다려도 안 받길래 끊으려던 찰나,

“여보세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어, 어… 지수야, 나 사원이.”

“…박사원? 사원 오빠?”

지수의 목소리는 예상보다 밝았다. 하지만 살짝 놀란 듯한 느낌도 들었다.

“오빠가 웬일이야? 진짜 오랜만이다.”

“그러게, 그러게… 잘 지냈어?”

“응, 뭐. 그냥 회사 다니면서 바쁘게 지내고 있어.”

그렇지. 나와 달리 지수는 취업해서 사회인이 된 지 오래됐겠지. 나는 그동안 뭐 했나 싶어 살짝 머쓱해졌다.

“그래서… 갑자기 아침부터 무슨 일이야?”

어떻게 말할까 망설이다가,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어… 혹시 오늘 시간 돼? 점심 전에 잠깐 볼 수 있을까?”

지수가 순간 망설이는 기색이 보였다.

“오늘? 근데 나 회사라서…”

“야, 잠깐이면 돼. 그냥 오랜만에 얼굴도 좀 보고, 커피라도 한 잔 하자.”

“흠… 어디서?”

“너네 회사 근처에 우리가 예전에 자주 갔던 카페 있잖아. 12시쯤?”

잠깐의 정적이 흐른 후, 지수가 한숨을 내쉬었다.

“… 알겠어. 근데 나 바빠서 오래는 못 있어.”

“그래, 잠깐이라도 보자.”

 

잠깐... 나 박사원인데,
얘가 아무리 세월이 지났어도 나한테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냐?  

 

예전에 자주 갔던 작은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서니, 분위기는 그대로였다. 예전에는 수업 끝나고 여기서 같이 공부도 하고, 가끔 늦게까지 수다도 떨었었는데. 

그래도 요새 뭐하고 사는지 궁금해서 톡 사진을 뒤졌다.

'남자 친구는 있으려나...' 순간 회사 면접 팁보다는 그게 더 궁금해졌다.

"우와.. 사진 뭐지.  다른 사람 인가?" 너무 이뻐져서 순간 소개팅 한 것 마냥 당황하고 설레기 시작했다. 

청사그룹 박사원 1화

"아 뭐야... D+1000 우리 자기 만난 날?" 

"아 그럼 그렇지. 남자가 생겼구나. 아 뭐 그래도 내가 뺏으면 되지. 이 정도면 땡큐지."

주문을 마치고 자리를 잡고 말도 안되는 상상에 빠지다 얼마 되지 않아 지수가 도착했다.

나는 순간 말을 잃었다. 지수가 사진처럼 확 달라져 있었다.

대학교 때만 해도 통통하고, 뿔테 안경을 쓰고 다니던 애였는데… 지금은 살도 빠지고 세련된 오피스룩을 입고 있었다. 피부도 좋아지고, 안경 대신 가볍게 화장한 얼굴이 더 또렷해 보였다. 

 

“오빠, 뭐야? 사람 놀라게 갑자기 연락하고.ㅎㅎ”

지수는 자연스럽게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직장인이라 그런지 예전과는 다르게 뭔가 여유로워 보였다. 

“어 그래…오랜만이다.”

나도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진짜 몇 년 만이지? 호주 갔다 온 이후로 거의 못 봤잖아.”

“그러게… 시간 진짜 빠르다.”

우리는 가벼운 근황을 이어갔다. 지수는 경인공업에서 꽤 오래 일했고, 나름 적응해서 잘 다니고 있다고 했다. 나는 공무원 시험 오랫동안 준비하다가 취업 준비로 돌아섰는데 이번에 면접을 보게 됐다고 짧게 설명했다.

그런데 내가 면접을 본다고 하자, 지수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면접? 어디?”

“아, 경인공업. 들어봤지? 너, 예전에 여기서 일했었다며?”

그 순간, 지수의 표정이 굳었다.

“… 경인공업?”

“응. 왜?”

지수는 뭔가를 말하려다 멈칫했다.

“아… 아니야. 그냥… 우연이네.”

“뭐야, 너 아직도 거기 다녀? 꽤 오래전이었던 거 같은데”

“응… 뭐. 그렇게 됐지. 곧 주임이야.”

지수는 애매하게 웃었다. 하지만 뭔가 숨기는 느낌이 들었다.

“근데 너 아까부터 표정이 왜 그래? 혹시 너 다니는 회사 면접 보러 오는 거 싫어?”

“아, 아니야. 그런 건 아닌데… 그냥 좀 놀라서 그랬어. 잘됐네ㅎㅎ”

지수는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말끝이 흐려졌다.

그러더니 핸드폰을 한 번 확인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안, 나 진짜 이제 가봐야 돼. 오늘 만나서 반가웠어.”

“아, 그래… 바쁘구나.” 

정작 물어봐야 했던 면접 팁은 꺼내지도 못했다.

“응. 그런데…”

지수는 말끝을 맺지 못하고, 뭔가를 고민하다가 덧붙였다.

"저기 오빠... 아 아니야. 미안 바빠서 금방 가야겠다. 이따가 연락할게." 

 

'엥? 뭐지?'

지수는 카페 들어온지 5분도 채 되지 않아 전화를 받더니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설마 누가 기다리고 있던 걸까?'

'아 점심 끝나가니까 돌아갔겠지.'

'아니면 아까 나한테 뭔 말이라도 하려던거 같은데, 설마 아직 미련이라도 남았나? ㅋㅋㅋ 그래 나도 취직해서 월급 좀 들어오면 바로 술 한잔 하자 하면서 꼬셔야겠다.'

급하게 떠난 지수를 보내고, 양복을 사러 쇼핑몰에 가던 길에 카톡 알람이 떴다. 지수였다. 그럼 그렇지 하며 폰을 열어봤다. 

슬쩍 자신감이 올라오면서, 예전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호주 다녀와서도 한동안 연락은 끊겼지만, 예전엔 그래도 꽤 친했잖아. 맨날 카페에서 같이 공부하고, 영화도 몇 번 같이 보고… 그때도 나를 좋아했던 거 아닐까?

'그래, 이거 분위기 나쁘지 않네. 취직하고 자연스럽게 분위기 좀 잡으면…'

그렇게 흐뭇한 상상을 하며 밖을 나서던 순간, 카톡 알람이 울렸다.

청사그룹박사원1화

 

면접과 회사 분위기는 어떤지 물어보면서 밥이나 같이 먹자고 말해보려 타이밍을 잡고 있었다. 대충 고맙다 둘러대면서 밥 먹고 다시 설레는 분위기로 몰아보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수가 10분째 말이 없다. 내 글은 읽었는데 답을 하지 않는다. 뭔가 망설이는게 틀림없다.

청사그룹 박사원 1화

아... 예상을 빗나간 전개였다.

카페를 나가면서 받던 전화는 아마 기다리던 남자 친구를 보러 나갔단 것 같다.

'아휴, 그럼 그렇지. 또 혼자 소설 한 편 썼네.' 

청사그룹 박사원 1화

 

그런데 점점 기분이 이상해진다. 

'참나 듣고보니 기분 더럽네. 누가 뭐 어떻게 한다고 말했나?' 카톡 창을 닫고 한참을 멍하니 폰을 바라보며 메시지를 천천히 상기시켰다.

‘그런데... 모른 척해달라고…?’

마치 중요한 사실을 숨기려는 사람처럼, 지수는 회사를 가면 모른 척해달라고 했다.   

'아니지! 그냥 만나는 사람 있으면 그렇다 말하면 되는데, 모른 척 해달라고 하는 건 좀 아니지 않나' 

'내가 전남자 친구도 아니고, 학교 선후배 사이라 말하면 될텐데. 흠, 이건 좀 이상한데...'

뭔가 숨기는 게 있는 것 같아 묘하게 신경 쓰인다. 하지만 남친 때문일 수도 있다 생각하며 잠시 씁쓸한 웃음 짓는다. 

'아니, 근데… 내가 들어간다고 말한 것도 아닌데 벌써부터 이러는 거 웃기네?'

 

어쩌면 그냥 정중한 거절의 표현일 수도 있겠지. ‘나도 그냥 대기업 가기 전에 잠깐 있을 곳인데 뭐’ 

'됐어. 대기업가서 더 이쁜 애들 만날거야.' 

별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 쿨한 척 말하려던 순간, 여전히 씁쓸함이 어딘가에서 밀려왔다. 

'혹시 뭐 숨기고 들어가기라도 했나?'

'에이 무슨.. 그래도 학교 생활 성실히 했었는데' 

괜히 기분이 이상해졌다. 뭔가 굉장히 조심하던 지수의 눈치가 이상했다. 하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내일이 면접이니 이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애초에 내가 면접을 보러 가는 건 지수 때문이 아니니까'

'나는 내 할 일만 잘하면 돼.' 라고 속으로 외치며 양복과 구두를 사서 집에 가는 버스에 올랐다. 집에 가서 자기소개나 영어로 연습해 볼 생각이었지만, 아까 그 메시지가 떠올라 영 집중을 할 수 없었다. 샤워하고 영어 연습이나 해 볼까 하고 노트북을 열었는데, 카톡이 또 왔다.. 

지수였다. 

'아니 근데, 야~ 아까는 좀 황당했어 ㅎㅎㅎ 오랜만에 만났는데 급하게 떠나니까 뻘쭘하잖아. 그런데 남친한테 나 아는거 숨길것 까지는 없잖아? 뭐 쪽팔리냐?'  

안 그래도 궁금했는데, 이번엔 이렇게 쿨한 척 물어봐야겠다 싶었다. 

 

청사그룹 박사원 1화

 

 


청사그룹 박사원은 매주 수요일, 일요일 자정에 연재됩니다. 소설에 나오는 시점, 회사명, 주인공 및 지역 등은 모두 허구입니다. 

 

작가의 말.

안녕하세요. 대기업 직장인이자 전 영어강사인 작가, 교육 컨설턴트 N잡러 후랭쿠입니다. 영어를 배우고 싶은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시중에 나와 있는 책들과 인강은 여러분들의 지갑을 항상 비우지만, 실제로 외국 또는 영업의 현장에서 써먹을 영어를 습득하기까지 도와주는 책이 얼마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퀄리티의 문제가 아니라, 여러분들이 내용을 공감하고 지속적인 학습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 있는지를 말입니다.  저는 편하게 읽는 이지 리딩의 콘텐츠로 많은 분들에게 영어의 두려움을 조금이나마 떨칠 수 있게 만들고 싶습니다. 조금 쓴 잔소리도 하겠지만, 그래도 응원을 더 많이 하겠습니다. 빠른 시일 내에 전자책으로 여러분을 만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때까지 블로그에서 많은 사랑과 관심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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